Unnamed
제1화. 패치 전야 병동
정형외과 대기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소리 없는 아침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접수대 앞에서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사람들이 천천히 일어났다. 누군가는 목을 문지르고, 누군가는 허리를 짚고,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삼켰다.
오아시스는 그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왼쪽 다리가 욱신거렸다. 병원에 오기 전까지는 “조금 무리했나” 정도였는데, 막상 의자에 앉고 나니 통증은 제법 선명한 형태를 갖추었다. 허벅지 뒤쪽을 타고 내려가는 묵직한 감각. 오래 앉아 있으면 더 불편하고, 일어서면 또 다른 방식으로 불편한 통증.
하지만 다리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패치.
오늘 밤, 오아시스는 자신이 만든 서비스의 구조를 크게 바꿀 예정이었다. 단순한 버튼 수정도, 화면 색상 변경도 아니었다. 기존 기능 하나를 없애고, 흩어져 있던 기억과 설정과 원고의 조각들을 새 구조로 묶는 패치였다.
유저들은 이걸 원했을까?
개발하는 동안에는 확신이 있었다. 기존 방식은 낡았고, 기능은 분리되어 있었고, AI는 원고를 도와주면서도 충분히 기억하지 못했다. 작가는 늘 같은 설정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했고, 시스템은 그 설명을 오래 붙잡지 못했다.
그러니 바꿔야 했다.
그런데 배포가 가까워지자 확신은 얇아졌다. 아이디어가 맞는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이미 여러 번 생각했다. 문제는 더 사소하고 더 무서웠다.
유저가 첫 화면에서 당황하면? 기존 기능이 사라졌다고 느끼면? 새로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너무 앞서간 거면?
오아시스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오아시스 님?”
접수대 쪽에서 이름이 불렸다.
그 순간, 대기실의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 사이로, 금속이 비에 젖었을 때 나는 냄새가 스쳤다. TV 화면의 자막이 잠깐 끊기더니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번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간호사처럼 보였지만, 손목에 찬 팔찌가 이상했다. 작은 수정 조각들이 척추뼈처럼 이어져 있었고, 그 안쪽에서 푸른빛이 천천히 점멸했다.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오아시스는 다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여 일어났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어깨 위에서 작고 가벼운 무언가가 몸을 털었다.
“아, 드디어 부르네.”
오아시스는 멈칫했다.
어깨 위에는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작은 검은 고양이. 눈동자는 동그랗게 빛났고, 홍채 대신 로딩 아이콘 같은 원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꼬리 끝은 물음표처럼 말려 있었다.
“……너 뭐야?”
고양이는 하품했다.
“찜찜이.”
“뭐?”
“네가 맨날 키우는 거. ‘이거 유저가 진짜 원한 거 맞나?’ 하고 속삭이는 애.”
오아시스는 잠깐 침묵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갑자기 말하는 고양이가 나타났다. 정상적인 반응은 비명을 지르거나, 최소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패치 날이었다. 이 정도 이상한 일은 놀랍긴 해도 일정표를 완전히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아니. 패치 전야에는 원래 이런 게 보여.”
찜찜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저 사람, 그냥 간호사 아냐. 신체 회로 감정사야.”
오아시스는 흰 가운의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진료실 문을 열고 있었다. 문턱 위에는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신체 회로 감정실.
진료실 벽에는 이상한 인체도가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뼈와 근육 그림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사람의 몸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목에는 ‘과사고 냉각관’. 어깨에는 ‘책임감 축적 부위’. 허리에는 ‘세계관 하중 지지대’. 다리에는 ‘현실 접지 회로’. 손목에는 ‘배포 버튼 전달관’. 가슴 한복판에는 ‘확신/의심 변환로’.
감정사가 차트를 넘기며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오아시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정직하게 대답했다.
“다리가 아프고요. 오늘 패치가 있습니다.”
감정사의 펜끝이 멈췄다.
찜찜이가 어깨 위에서 웃음을 참았다.
“말했다. 현실 사람한테 말했다.”
감정사는 오아시스를 한 번, 어깨 위의 찜찜이를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조금도 놀라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패치 전야 증후군이 동반됐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그게 병명입니까?”
“정확히는 마법사성 과부하입니다. 특히 구조계, 명명계, 예언계 마법사들에게 흔합니다.”
오아시스는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다리는 여전히 욱신거렸다. 하지만 이제 그 통증은 단순한 근육통이라기보다, 무언가가 자신을 현실에 붙잡아 두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감정사는 오아시스의 다리를 몇 번 움직여 보았다. 발목을 당기고,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살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피부 아래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번졌다.
“큰 저주는 아닙니다.”
오아시스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나 골절도 아니고요. 다만 현실 접지 회로가 많이 긴장해 있습니다. 상위 구조 사고를 과하게 돌리셨네요.”
“상위 구조 사고요.”
“머리는 계속 시스템 위층에 있는데, 몸은 병원 의자에 앉아 있으니까요. 하체가 항의하는 겁니다. ‘나는 아직 현실에 있다’고.”
찜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 몸 너무 무시해.”
“네가 그런 말 할 입장이야?”
“나는 사역마라서 입장은 없어. 의견만 있어.”
감정사는 처방전을 뜯어 건넸다. 종이에는 약 이름 대신 문장이 적혀 있었다.
[처방] 배포 전 1회: 완벽함은 관측 전까지 미완성이다. 배포 후 1회: 로그 확인. 통증 시: 몸을 인간으로 인정할 것. 금기: 대기실에서 신규 대형 시스템 설계 금지.
찜찜이가 처방전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마지막 건 못 지킬 것 같은데.”
오아시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 이미 떠올렸다. 신체 회로 감정실이라는 개념은 꽤 쓸 만했다. 인간의 몸을 시스템으로 보고, 피로를 로그로 읽고, 통증을 알림으로 해석하는 마법 의료 체계. 만약 이걸—
“지금 새 세계관 만들었지?”
“안 만들었어.”
“거짓말.”
감정사가 웃었다.
“패치 전야 병동으로 가보시겠습니까?”
진료실을 나오자 복도 끝에 아까는 없던 문이 생겨 있었다. 문 위의 금속판에는 영어와 한글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PATCH EVE WARD 패치 전야 병동
문을 여는 순간, 오아시스는 숨을 멈췄다.
그곳은 병동이라기보다 작은 마탑의 휴게실 같았다. 흰 벽 대신 오래된 석벽이 있었고, 천장에는 형광등과 별빛이 동시에 걸려 있었다. 의자마다 마법사들이 앉아 있었다. 어떤 마법사는 허공에 떠 있는 버튼명을 끝없이 바꾸고 있었다.
“Create? 아니야, 너무 넓어. Generate? 차가워. Compose? 유저가 모를 수도 있어……”
다른 마법사는 수정구 속 로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로컬에서는 됐는데. 로컬에서는 분명 됐는데.”
또 다른 마법사는 작은 사역마와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었다.
“오늘은 MVP만 한다고 했잖아!” “하지만 온보딩 플로우도 손보면 좋잖아!” “MVP라고!” “완성도가 중요하지!”
오아시스는 그들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패치 전야의 마법사들은 모두 비슷했다. 평소에는 세계를 다시 설계할 수 있을 것처럼 굴다가, 배포 직전에는 단어 하나, 버튼 하나, 안내문 한 줄 앞에서 무너졌다.
그때 병동 중앙의 늙은 마법사가 오아시스를 불렀다.
“젊은 구조술사.”
그는 낡은 후드 로브를 입고 있었다. 지팡이 끝에는 작은 서버 랙 모양의 수정이 달려 있었고, 수정 안쪽에서는 수많은 불빛이 깜빡였다.
“오늘 세계를 고치나?”
오아시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조금요.”
찜찜이가 즉시 끼어들었다.
“조금은 아니지.”
늙은 마법사는 웃었다.
“모든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지. 조금 바꾼다고. 하지만 세계는 안다. 규칙 하나가 바뀌면, 사람들의 손길도 바뀐다는 것을.”
오아시스는 병동 한쪽에 앉았다.
“유저가 이걸 원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배포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확신하죠?”
“확신하려고 배포하는 게 아니다. 관측하려고 배포하는 것이다.”
늙은 마법사가 지팡이로 바닥을 톡 쳤다. 그러자 허공에 세 문장이 떠올랐다.
첫째. 유저는 네 머릿속 설계를 보지 않는다. 흐름을 본다. 둘째. 기능은 설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용으로 완성된다. 셋째. 오늘의 패치는 결론이 아니라 관측 시작이다.
찜찜이가 드물게 조용해졌다.
오아시스는 그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모양이 바뀌었다. 검은 안개 같던 것이 접힌 종이처럼 작아졌다. 펼치면 체크리스트가 될 것 같은 종이.
“그래도 실패하면요?”
“로그를 읽고 다시 고치면 된다.”
“너무 많이 바꾼 거면요?”
“덜어내면 된다.”
“유저가 당황하면요?”
“안내하면 된다.”
“제가 틀렸으면요?”
늙은 마법사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틀리는 것보다 더 위험한 건, 아무것도 관측하지 않는 것이다.”
그 말에 오아시스는 웃고 말았다.
마법 같은 말은 아니었다. 신비한 주문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가장 강한 주문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다시 이름이 불렸다.
이번에는 현실의 대기실이었다.
오아시스는 눈을 깜빡였다. 손에는 처방전이 들려 있었다. 벽에는 평범한 인체도가 걸려 있었고, TV에서는 여전히 소리 없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깨 위의 찜찜이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방금 일이 있었던 걸까.
오아시스는 휴대폰을 켰다. 화면에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패치 마무리. 공지 작성. 배포 확인. 로그 지표 확인. 유저 문의 대응.
그리고 메모장 맨 위에, 자신이 쓴 적 없는 문장이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오늘의 패치는 결론이 아니라 관측 시작이다.
오아시스는 한참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짧게 웃었다.
다리는 아직 아팠다. 몸은 여전히 현실에 있었다. 병원비도 현실이었고, 남은 개발도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덜 무거웠다.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버튼명은 한 번 더 봐야 하지 않나?”
접수대 앞,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 위에 작은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로딩 아이콘 같은 눈동자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오아시스는 낮게 말했다.
“한 번만.”
찜찜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두 번.”
“한 번.”
“한 번 반.”
“합의.”
고양이는 만족한 듯 눈을 감았다.
오아시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실 접지 회로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이제는 그 신호가 싫지만은 않았다. 몸이 말하고 있었다. 너는 아직 여기에 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바꾸면 된다.
병원 문이 열리자 바깥의 빛이 밀려들었다.
오늘 밤, 오아시스는 세계를 조금 바꿀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고 공지할 것이다.
하지만 찜찜이는 알고 있었다.
마법사도 알고 있었다.
조금 바뀐 규칙은, 때때로 세계의 방향을 바꾼다.
오아시스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마음속으로 아주 작고 위험한 주문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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